지웅배 작가의 책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지구로부터 우주의 거리를 재다는 이름부터 조금 낯설고 철학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펼쳐보면, 우주를 어떻게 측정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차분하게 풀어낸 과학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특히 천문학이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비유와 사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우주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우주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어두운 공간 속 반짝이는 별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혹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먼 별은 도대체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우리는 직접 우주를 걸어가서 재볼 수 없습니다.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닿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주의 크기, 별과 별 사이의 거리, 은하의 구조를 알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알고 있다’는 감각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를 다룹니다.
책에서는 천문학자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구축해 온 측정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처음에는 손가락과 눈으로 별을 재고, 그다음으로 삼각법과 같은 기하학적 방법을 사용했고, 이후에는 별빛의 색과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렇게 작은 관찰과 생각의 연결이 쌓여 우주는 점점 ‘거리감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세계로 다가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우리가 직접 가지 않아도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알려고 하는 마음과 관찰하는 시선이 세계를 넓힌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과학 지식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별빛은 어떻게 거리가 되는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은 빛을 통해 거리와 시간의 정보를 읽어내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별빛은 지금 이 순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 전의 빛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과거의 빛 속에 별의 크기, 온도, 구성 물질, 그리고 거리까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것은 마치 별빛이 하나의 긴 편지처럼 느껴집니다.
책에서는 이런 과정을 아주 부드럽게 설명합니다.
빛의 파장을 분석하면 그 안에 희미한 ‘지문’처럼 별의 정체가 기록되어 있고, 그 지문을 읽는 능력이 곧 천문학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사람의 음성만으로 감정과 상태를 알아채는 것과 비슷합니다. 직접 다가가 만져볼 수 없어도 읽을 수 있다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측정이라는 것이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상상력과 해석의 조화라는 점이 돋보입니다. 별빛 하나를 두고서,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읽어낼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연구자들의 사고와 질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문학은 수식과 그래프를 넘어서, 세계에 대한 감각의 과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우주를 알고 싶어할까?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하늘의 별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밤하늘을 바라보며 의미를 찾고, 방향을 잡고, 이야기를 만들어왔습니다. 책은 아주 은근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줍니다.
우주를 아는 일은 결국 나를 아는 일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동시에, 그 작은 존재가 우주를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태도와 시야의 확장에 가깝습니다.
책 후반부에서 작가는 우주를 바라보는 마음은 결국 거리감 속에서 관계를 찾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별까지 닿을 수는 없지만, 별빛과 계산, 관찰을 통해 거리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나 사이의 관계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 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책은 천문학의 이야기에서 사람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이면서 동시에, 생각을 오래 머물게 하는 에세이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그저 반짝임이 아니라, 시간과 거리, 그리고 이야기들이 담긴 빛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다’는 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사유의 방식이라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우주의 거리를 잰다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시도입니다.
그 시도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멀어서 닿지 않을 것 같은 것들도, 천천히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조금씩 선명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다시 불러오는 책입니다.
조용하지만 깊게, 천천히 오래 남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