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넘치고, 지방은 텅 비었다: 일자리의 쏠림 현상
“지방엔 일자리가 없고, 도시는 자리가 없다.”
이 말은 지금 대한민국 노동시장을 가장 정확히 요약한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수도권으로 직업 기회가 집중되면서, 지방은 인구 유출과 산업 축소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고, 반대로 도시는 주거 비용 상승과 청년 실업이라는 과잉의 부작용을 안고 있습니다. 마치 ‘기회의 밀도’와 ‘삶의 질’이 서로 충돌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죠.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전체 인구의 약 51.5%가 집중되어 있으며, 청년층(20~34세)의 경우 60%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합니다. 반면 강원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등 상당수 지방 도시들은 매년 1% 이상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지방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이 무려 전국 시군구의 절반에 달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핵심은 일자리의 쏠림 현상입니다. 대기업 본사, 정부기관, IT 및 금융업종의 대부분은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청년들이 꿈꾸는 직업군 역시 그곳에 존재합니다. 대졸자가 지방에서 취업을 시도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죠. 반대로 지방에는 전통 제조업, 농업, 서비스직 위주의 일자리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결국 이 흐름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 인구의 일방적 이동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지방은 더 일자리를 잃고, 도시는 더 혼잡해지는 역설적 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일자리가 없어 사람이 떠나고, 사람이 없으니 기업도 떠나는 이 ‘인구 악순환’은 단순한 지역 불균형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 지방에 ‘사람’이 부족한 이유: 일자리는 있지만 매력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방에는 아예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방에는 분명 일자리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일자리에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지방의 일자리는 ‘희소한 기회’이기보다는 ‘기피되는 선택지’가 되어버린 것이죠.
대표적인 사례가 중소 제조업체, 농·축산업, 특수 기술직 분야입니다. 이들 업종은 지방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지방 소재 공장이나 생산라인에서 일할 청년층이 부족해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는 경우도 흔하죠.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 임금이 낮고 근로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 복지, 문화, 교육 인프라가 수도권보다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성장 경로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선 평범한 대리도 스타트업 이직, MBA, 네트워킹 등 수많은 성장 옵션이 열려 있지만, 지방의 중소기업에 입사한 청년은 5년 후, 10년 후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도, ‘경력’과 ‘비전’은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지방 일자리의 매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방의 일자리는 ‘양적 부족’보다는 질적 매력의 부족이 더 큰 문제입니다. 청년은 단순히 취업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곳’, ‘성장할 수 있는 경로’, ‘함께할 동료’가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지방 일자리는 이 3가지 중 하나도 만족시키기 어렵습니다.
🌐 새로운 균형을 위한 해법: 지역 일자리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고착화된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지방 살리기’는 수십 년째 계속된 과제지만, 여전히 효과적인 돌파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단순히 기업 유치만으로 해결되진 않습니다. 이제는 지역 일자리 자체를 재설계하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1️⃣ 지방에서도 ‘고부가가치’ 직업이 가능해야 한다
지방에도 IT, 콘텐츠, 문화산업 등 고소득·고성장 직종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특화된 산업 클러스터를 유치하거나 창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경북 포항은 기존의 철강 산업에서 벗어나 바이오·소재 기술 허브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고, 강원도 춘천은 바이오 산업 중심지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2️⃣ 원격 근무, 디지털 노마드에 맞춘 지역 재정비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와 디지털 프리랜서 문화가 확산되면서, 굳이 서울에 살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방은 자연환경, 주거 비용, 여유로운 삶을 강점으로 삼아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직업 모델’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전남 고흥이나 제주 등에서는 이미 디지털 노마드 대상 거점 공간을 운영하며 이 흐름에 올라타고 있습니다.
3️⃣ ‘지역 이직’이라는 개념을 정착시켜야 한다
서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 일정 기간 후 지방으로 이직해도 경력단절 없이 연계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현재는 지방 이직이 곧 커리어 하락으로 인식되는데, 이를 “도심→지방→글로벌” 식 경로로 연결해 줄 인재 순환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4️⃣ 청년층과 지역이 만날 수 있는 중간 접점 설계
지방대 출신, 지역 출신 청년이 아닌 타지 청년들이 해당 지역에서 직업을 가지도록 유도하려면, 단기 인턴십·레지던시 프로그램, 주거 지원, 지역 커뮤니티 연결 등 ‘정착’을 도와주는 패키지 전략이 중요합니다.
🔚 마무리: 일자리의 공간적 재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일자리가 ‘공간적으로 왜곡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수도권은 일자리가 과밀하여 경쟁이 치열하고, 지방은 일자리가 있어도 사람이 없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구조를 해소하지 않으면, 청년은 끊임없이 서울을 향해 달릴 것이고, 지방은 점점 더 ‘기회의 사각지대’로 밀려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일자리 재분배’가 아닌 ‘일자리 재설계’를 논의해야 합니다. 지방이 단순히 노동력 수요를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일하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에게는 지역에서 시작하는 커리어도 충분히 의미 있고 성장 가능한 선택지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문화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방에는 분명 ‘기회’가 있습니다. 다만 그 기회가 지금은 묻혀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그 기회를 발굴하고, 연결하고,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