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크린 속 ‘가짜’ 스타, 팬들은 진짜처럼 사랑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연예계는 조금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 광고에서 미소를 짓는 모델, MZ세대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인플루언서, 또 어떤 경우는 음악 방송에서까지 등장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바로 '버추얼 휴먼(Virtual Human)'이라 불리는 가상 인물들이다.
특히 2025년 현재, AI 기반으로 제작된 이 가상의 연예인들은 단순한 그래픽을 넘어 성격, 말투, 표정, SNS 활동, 음성까지 갖춘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팬들은 이들을 현실 연예인처럼 응원하고, 팬아트도 그리며 굿즈까지 만들어 판매한다. 더 이상 ‘가짜’라고 치부하기엔 이들의 팬덤과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버추얼 인플루언서 ‘루이사’는 이제 명품 브랜드와 공식 협업을 하고 있으며, 음원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적도 있다. 처음엔 호기심에서 시작한 관심이, 어느새 현실 스타 못지않은 팬덤 문화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연예계 판도에서 이 가상의 존재들이 진짜 사람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2. 팬문화의 경계가 흐려지다: 진짜와 가짜, 그 사이
버추얼 휴먼이 등장하면서 가장 크게 흔들린 것은 팬문화다. 과거 팬덤은 ‘현실 속 스타’와의 접점을 중시했다. 콘서트, 팬미팅, 사인회처럼 물리적인 공간에서 교류하는 게 핵심이었는데, 요즘 팬들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 가상 존재는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뿌려주고, 팬의 반응에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AI 기반 팬관리 시스템은 각 팬의 취향을 분석해 맞춤형 메시지를 보내고, 심지어는 팬이 남긴 댓글 스타일을 학습해 자연스럽게 대화도 이어간다. 이쯤 되면 팬은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AI가 잘 설계한 경험에 빠져든 건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또한, 일부 팬들은 오히려 인간 스타보다 가상 스타를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스캔들, 군입대, 은퇴 걱정 없이 꾸준히 활동하고, 늘 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가상 스타는 그야말로 실망시키지 않는 ‘이상적 존재’다. 인간 연예인의 불안정성과 리스크를 피하려는 심리가 점점 가상 스타 쪽으로 쏠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팬문화에는 여전히 감정의 허위성이라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진짜’가 아닌 존재를 사랑하고 열광하는 행위는 과연 정서적으로 건강한가? 그리고 그 감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AI 제작사? 광고주? 아니면 결국 팬 본인의 위로를 위한 자가소비일 뿐인가?
3. 상업성과 윤리의 경계, 그리고 앞으로의 연예계
AI로 만들어진 버추얼 휴먼이 성공할수록, 제작자는 점점 더 ‘이상형’에 가까운 스타를 만들어내고 있다. 피부는 완벽하고, 논란은 없으며, 정치적 입장도 없고, 언제나 팬 친화적이다. 이처럼 계산된 매력은 광고주와 기획사엔 환영받지만, 예술과 인간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위협적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실제 연예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학습시켜 가상의 새로운 인물로 재창조하는 ‘딥페이크형 버추얼 스타’도 생겨나고 있다. 이 경우, 실존 인물의 초상권, 저작권, 감정노동의 대체 문제까지 얽히면서 법적, 윤리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연예계는 점점 더 진짜 사람보다 기획된 인물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이는 신인 연예인의 입지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AI가 사람을 흉내 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스타가 만들어지고 있고, 팬들도 이를 인식하면서도 소비하고 있다. 다만, 이 흐름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단순히 트렌드로 치부하기엔 이미 버추얼 스타는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