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판사·법률 상담 도입과 법적 한계는 최근 법조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의 중 하나입니다. AI가 판결을 내리거나 법률 조언을 제공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그 법적 효력과 책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1. 인공지능이 법률을 다루는 시대, 어디까지 왔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 판사’라는 말은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에서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국가는 법원 시스템에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스토니아는 소액 민사 사건(약 1만 유로 이하)을 처리하는 AI 판사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이 시스템은 관련 법률, 판례, 증거 자료를 분석해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고, 판사가 이를 검토·승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한국에서도 AI를 법률 분야에 활용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법원행정처는 AI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도입해 유사 사건의 판례를 자동으로 분석하고, 법관이 참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변호사 업계에서는 AI 법률 상담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톡이나 ‘헬로로 같은 플랫폼이 AI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의 질문을 분석하고, 관련 법률 정보를 자동으로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법률 접근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예전에는 변호사를 직접 찾아가야만 받을 수 있었던 상담이 이제는 AI 챗봇을 통해 빠르고 저렴하게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AI가 내린 조언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AI의 판단이 틀렸을 때는 누가 책임지나?”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2. AI 판결과 법률 조언, 법적 효력은 어디까지인가
현재의 법 체계에서는 AI의 판단이나 조언은 ‘법적 효력’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법은 기본적으로 인간만이 법적 주체가 될 수 있으며, AI는 단지 도구로 취급됩니다.
즉, AI가 판결을 내리거나 법률 자문을 하더라도, 그것은 참고 자료 또는 보조적 의견일 뿐, 법적 구속력이 있는 ‘판결’이나 ‘공식 자문’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AI가 “이 사건은 무죄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는 조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법원에서 그 말을 근거로 무죄가 선고되지는 않습니다. 판결은 오직 인간 판사가 내리며, 법률 상담 역시 변호사법에 따라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만 공식적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즉, AI는 법률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법률 자문’이라는 행위는 법적으로 제한되는 것입니다.
또한 AI 판결 시스템이 판사의 업무를 일부 대체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은 항상 인간에게 있습니다.
AI가 분석한 데이터와 판례는 참고 자료일 뿐, 판사는 이를 검토한 후 “최종 판단”을 내립니다.
이는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만약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 책임을 AI에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책임은 해당 시스템을 운영한 기관이나 법관 본인에게 귀속됩니다.
이런 이유로, 법조계에서는 AI 판사 도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객관적일 수는 있지만, 법은 단순한 데이터 계산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 포함된 영역”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컨대, 동일한 법 조항이라도 사건의 맥락, 피고인의 반성 정도,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요소는 아직 AI가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3. 기술 발전과 법적 책임 사이의 균형
AI가 법률 분야에 자리 잡으면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책임 주체의 명확화입니다. AI의 판단이 틀렸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가 핵심 쟁점입니다. 현재까지는 일반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한 기업 또는 기관이 법적 책임을 집니다.
AI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사용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소프트웨어 오류’로 간주되어 개발사나 서비스 제공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점점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가 AI 법률 도구를 이용해 작성한 문서에 오류가 생겼다면, 책임이 변호사에게 있는지, AI 시스템에 있는지, 아니면 그 둘 모두에게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이 때문에 각국에서는 AI 법률 서비스에 대한 법적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입니다.
유럽연합(EU)은 AI 법안(AI Act) 초안을 통해, 고위험군 영역(법률, 의료, 금융 등)에 사용되는 AI는 투명성·책임성 기준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즉, AI가 법적 판단을 내릴 경우, 그 근거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비슷한 논의를 진행 중이며, 법무부는 2025년부터 ‘AI 법률 서비스 인증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AI가 제공하는 법률 정보의 신뢰성을 평가하고, 오류나 허위 정보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또 하나의 논점은 AI의 독립된 법적 지위 인정 여부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과를 내릴 수 있다면, 일정 수준의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아직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고, 윤리적 논란도 많습니다.
현재로서는 AI를 ‘법적 주체’로 인정하기보다, ‘법적 행위의 보조 도구’로 한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으로 보입니다.
AI가 법을 해석하고 조언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법은 인간의 사회적 가치와 도덕, 감정이 결합된 제도입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판단과 공감 능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I는 ‘법을 돕는 도구’로서 역할을 강화하되, 인간의 결정권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기준입니다.
AI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 결과의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법제는 기술 발전보다 ‘책임의 선’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입니다.